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이 왔다. 풍요로운 황금빛의 가을 들판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곤충 중에는 유난히 풀벌레들이 많다.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풀벌레들의 소리를 들어보고, 풀벌레들의 귀는 어디에 있는지, 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풀벌레들의 소리
먼저 풀밭에 나가 조용히 귀 기울여 곤충들이 연주를 감상해 본다. "츠츠츠, 짓짓짓, 지이이, 귀뚤귀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소리들이 서로 어울려 합주를 하거나 독주를 한다. 여기에 물소리, 바람 소리, 풀줄기 스치는 소리가 함께 어울리면 그야말로 낭만적인 자연의 교향곡이 완성된다. 소리를 내는 풀벌레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살펴보자. 소리를 내는 풀벌레들은 곤충 중에서도 메뚜기 무리에 속하는 것이 많다. 베짱이, 방울벌레, 여치, 귀뚜라미, 긴 꼬리를 비롯하여 풀종다리, 쌕쌔기 등은 모두가 울음소리를 내는 메뚜기 종류이다. 그 밖에도 매미도 소리를 내고 개구리나 새가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주의 깊게 들어 보면 서로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풀벌레 울음소리와는 차이가 난다. 대체로 메뚜기들은 조용하고 비슷한 음을 반복해서 소리를 낸다. 그런데 풀벌레들은 어떻게 소리를 내는 것일까? 곤충은 성대가 없기 때문에 입으로 직접 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그 대신에 곤충은 뭔가를 비빌 때 소리가 난다. 빨래판을 칫솔로 문지르면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그것을 '마찰 기관'이라고 하는데, 주로 앞날개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풀벌레가 양쪽 날개를 벌렸다가 오므리면 서로 맞닿으면서 소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얇고 투명한 날개의 뒷부분은 귀뚜라미와 여치의 수컷이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낸다. 우리가 풀피리를 불 때 얇은 풀잎이 빠르게 떨리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마찰 기관이 뒷다리 안쪽에 있어서 다리를 날개에 빠르게 비벼서 우는 종류도 있다. 바로 메뚜기이다. 마찰 작용으로 생기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닿는 부분이 점점 닳기 때문에 가을이 깊어지면 더욱 부드럽게 변해 간다. 매미는 좀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매미의 수컷은 뱃속의 브이자 모양 근육을 움직여서 발음막을 울리면 이 진동이 뱃속의 텅 빈 공간에 울려서 소리가 난다.
풀벌레의 귀
물론 곤충들도 소리를 낼뿐만 아니라 들을 수도 있다. 자기들이 내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풀벌레들은 자기와 같은 종의 울음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사람의 귀 안쪽에는 얇은 고막이 있고 이것이 청신경으로 뇌와 연결되어 소리를 인식한다. 그런데 풀벌레의 귀는 얼굴에 있지 않고 특이하게 다리나 배에 있다. 여치와 귀뚜라미 무리는 앞다리 양쪽 무릎 근처에 고막이 있는데,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하면 사람의 귀와 마찬가지로 얇은 막처럼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리에 이끌린 암컷은 천천히 걸으면서 앞다리로는 좌우 방향을 잡아 소리가 들리는 쪽을 찾아간다. 메뚜기 무리는 배 양쪽 옆구리 근처에 역시 얇은 귀가 둥글게 뚫려 있다.
소리를 내는 이유
그러면 곤충들은 왜 소리를 낼까? 바로 짝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독특한 신호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중에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를 내는 것도 있다. 그리고 소리를 내는 곤충의 대부분은 수컷이다. 곤충의 울음소리는 자신의 짝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보지 않고도 정확히 알려 주는 통신수단이다. 그런데 이 소리가 오히려 위험하게도 자신의 천적을 불러들이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살아 있는 곤충의 몸에 알을 낳는 기생파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귀뚜라미의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 수컷이 열심히 울고 있는 틈을 타서 기생파리는 귀뚜라미 몸에 슬쩍 알을 붙여 놓고 달아난다. 또 청각이 예민한 박쥐나 고양이도 캄캄한 밤에 울고 있는 여치나 귀뚜라미의 소리를 듣고 정확히 숨어 있는 곳을 찾아내서 잡아먹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에서는 풀벌레 소리를 '운다'라고 표현했는데, 서양에서는 '노래한다'라고 표현한다. 똑같은 벌레 소리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 같다. 여러분들에게는 풀벌레들의 소리가 신나게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나요, 아니면 슬프게 우는 것처럼 들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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